이 책의 편목은 천문天文 4권·지리地理 16권·인물人物 14권·시령時令 4권·궁실宮室 4권·기용器用 12권·신체身體 7권·의복衣服 3권·인사人事 10권·의제儀制 8권·진보珍寶 2권·문사文史 4권·조수鳥獸 6권·초목草木 12권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림과 문장이 상호 인증認證하는 방식으로 세세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완비되어 있어,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왕치王圻의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막내아들 쓰이思義 역시 서적을 만드는 일에 마음을 두고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보충하여 완비하였다季兒思義,亦搆心往牒,廣加蒐輯,圖益大備.” 구빙쳰顧秉謙의 서문에서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앞의 삼도는 모두 어사공의 손으로 마름질하고(구성하고), 뒤에는 쓰이가 이를 계속하였다前三圖皆御使公手裁,而后則允明史之所續.” 이를 통해 全書는 왕치와 쓰이가 함께 편찬하여 완성하였고,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을 예를 들어 하나씩 설명하는 것은 모두 왕치의 손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고, 쓰이의 편찬을 도운 공로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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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왕치王圻 자字는 위안한元翰 호號는 훙저우洪洲이며 상해사람이다. 명나라 쟈징嘉靖 44년(1565, 명종20) 진사에 급제하여 칭쟝淸江현 현위를 제수 받았으며, 완안萬安현으로 파견되어 어사御史로 임명되었다. 그는 사람됨이 올곧고 정직하여 직언을 서슴치 않아 그 당시 재상을 거역하게 되어 복건성福建省의 안찰첨사按察僉事로 나갔으며, 치웅저우邛州의 판관判官으로 좌천되었다. 진셴進賢현과 차오曹縣현의 현위를 역임하였으며, 카이저우開州, 즈저우知州 등지로 관직을 옮겨갔다. 산시陝西에서는 布政司(포정사) 참의參議직을 역임하다 나이 많아 벼슬을 사직하고 귀향하여 주로 저술에 전념하였으며 85세에 사망했다. 저서로는 『삼재도회』외에도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254권, 『패사휘편稗史彙編』 175권, 『동오수리고東吳水利考』 19권 등이 있다.
왕쓰이王思義 자字는 윈밍允明이며, 역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송사찬요宋史纂要』 20권, 『향설림집香雪林集』 26권, 『고사선요故事選要』 14권이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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