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端宗은 태어난지 삼일만에 어머니 현덕왕후를 여의고 세종의 후궁인 혜빈양씨의 젖을 먹고 자랐고 1441년 세종 23년에 태어나 1457년 세조 3년 세상을 떠나기 까지 조선조 6대 임금으로, 재위 3년으로 1452년에서 1455년까지. 휘는 홍위弘暐, 문종文宗의 아들로 8세에 왕세손王世孫, 10세에 세자에 책봉, 12세에 문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문종은 세자가 나이 어린 것을 걱정하여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보필輔弼을 당부하였고, 성삼문成三問·신숙주申叔舟·박팽년朴彭年 등에 좌우협찬左右協贊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건만 단종 3년 6월 12일 밤 수양대군은 소매 속에 철퇴鐵槌를 감추고 단종을 찾으니 어린 단종은 수양대군의 안색이 편안치 아니함을 알아 차리고 용상龍床에서 내려와 “내 실로 왕위를 원함이 아니로 소이다”하고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수양대군은 선위의 형식으로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고 단종을 상왕上王으로 삼았던 것이다. 숙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인지鄭麟趾·한명회韓明澮·권남權擥 등과 결탁하여 황보인·김종서 등 보필 신하를 없애는 등의 방법으로 왕위를 강탈하였고, 1455년 세조 1년에는 성삼문·박팽년 등 세칭 사육신死六臣 등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김질金礩의 고변으로 발각이 되어 모두 참형되고, 1457년 세조 3년에 상왕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고 영월寧越에 유배되었다. 그 해 가을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가 전남 순흥順興에서 다시 단종을 복위하려는 모의가 발각되자 노산군에서 다시 서인庶人이 되었고, 같은 해 12월 24일 영월에서 사약을 받게 되니 이 때 노산군은 “내 위에 더 높은 사람”이 없다고 호령하자 한 공생貢生이 활 시위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하니 이 때가 세조 3년 10월 24일 유시酉時였다. 그리고 이 기록은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등 야사와 고사에 쓰여있고 정사에는 기록되지 못한 사실들을 모아서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중고모仲姑母가 되는 여흥驪興 민씨閔氏(남편 홍만형洪萬衡)가 한문으로 쓰여 있는 기록들을 국문으로 풀어서 쓴 사대四大 궁중문학宮中文學의 하나인 단종대왕의 육신록六臣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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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 3 머리말 ... 35 육신록 해제 ... 37 궁정 문학의 맥락에서 본 문맥과 문맥 ... 40 참고문헌 ... 41 일러두기 ... 43
본문 ... 47 1. 고대문 뉵신녹 ... 48 현대문 육신록 ... 49 2. 고어문 단종튤손긔 ... 128 현대문 단종출손기 ... 129 3. 고어문 참판박공일긔 ... 140 현대문 참판박공일기 ... 141 4. 고어문 뉵문졍튱졀힝록 ... 156 현대문 육문정충절행록 ... 157 5. 육신묘비명역해 ... 214
원전 ... 223 1. 뉵신록 원전 ... 223 2. 단종출손기 원전 ... 243 3. 참판박공일기 원전 ... 247 4. 육문정충절행록 원전 ... 253 5. 한문 육신전 원전 ... 265 6. 육신묘비명 탁본첩 원전 ...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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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경북 상주태생으로 호는 벽천 수하당이다. 동양의약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동화통신사 기자로 활동했다. 궁정고전연구소 소장, 성균관 서울시운영위원회 운영위원, 도서출판 민속원 대표, 풍산홍씨 대종회 회장등을 지냈다. 저서에「인목대비의 서궁일기」「혜경궁의 읍혈록」「유성기음반가사집 Ⅰ,Ⅱ」(공편),「육신록」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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