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활자본으로 8권 8책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있다. 조선 초기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 등 오례(五禮)에 관한 의식절차를 기록한 책이다. 고조선 이후 고려시대까지 오례와 관련된 의식은 지속적으로 개최되어 왔으나 규범으로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후 고려 말 성리학이 들어와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성리학적 질서에 따른 예론의 규범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국가에서 행하는 각종 의식 절차가 정해진 규범이 없어 혼란을 겪게 되자 세종은 하나의 통일된 규범을 제작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예조판서 허조(許稠) 등이 각종 예서(禮書)와 《홍무예제(洪武禮制)》 등을 참작하고 《두씨통전(杜氏通典)》을 모방하여 오례의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세종은 그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세조가 강희맹(姜希孟) 등에게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찬술과 함께 오례에 관한 사항도 수정 보완하고 도식을 붙여 편찬하도록 하였으나 탈고하지 못하다가 결국 성종 때인 1474년(성종 5) 신숙주(申叔舟)와 정척(鄭陟) 등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러한 편찬 과정은 강희맹이 쓴 오례의서(五禮儀序)에 잘 나타나 있다.
책의 내용을 보면 길례는 모두 56개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가에서 산천과 종묘(宗廟) · 사직(社稷)에 올리는 제사에 관한 의식, 선농제(先農祭)· 선잠제(先蠶祭) 기우제(祈雨祭)· 석전제(釋奠祭) 등 국가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지내는 제사 의식, 사대부와 일반 백성들의 시향(時享) 등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가례는 모두 50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에 대한 사대례(事大禮)와 왕과 왕세자 및 백관들의 조하의(朝賀儀), 궁궐에서 행해지는 납비(納妃) · 책비(冊妃) 등의 의식절차, 왕세자의 관례, 국왕이 참여하여 베푸는 각종 잔치와 양로연(養老宴) 등에 관련된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다. 빈례는 6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 일본 유구 여진족 등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접대하는 규칙과 의식절차 등이 기록되어 있다.
군례는 7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활쏘기 의식인 사례(射禮), 군대를 점검하는 의식인 열병(閱兵), 군사들의 무예정도를 살펴보는 강무(講武) 등에 관한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다.
흉례는 91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과 왕비의 임종에서부터 성복(成服) ·삭망(朔望) ·발인(發引) ·반우(返虞) 등 국장(國葬)과 관련된 세세한 의식절차와 왕세자 · 왕자 · 공주 · 옹주 · 왕비의 부모 · 왕세자빈의 부모 등 왕실과 관련된 장례의식 절차 등이 주로 기록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사대부와 서민들의 장례 절차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편찬으로 비로소 조선시대 의례와 관련된 기본 규칙이 정해졌으며, 향후 일부 사항을 보완하여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가 간행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 각종 의례를 연구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자료이며, 의례의 변화 과정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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