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무섭다
허균의 부정과 일탈을 찬찬히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의 치부致富를 위한 부정과 일탈은 한 가지도 없었다. 허균은 남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서 가진 것이 없다. 벼슬아치들이 흔히 저지르는 장죄贓罪가 없다. 허균이 일평생 가난하게 산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일탈은 한결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베풀고 도와주다가 불법으로 처벌받은 것뿐이다. 불법은 분명하지만 그 죄가 그다지 밉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관청 재물을 도둑질한 도적이지만, 홍길동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홍길동은 자신을 위해서 도둑질한 것이 아니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도둑질한 것이고, 궁극에 가서는 율도국에 가서 백성을 위한 이상국가를 만들고 돌아왔으니, 어찌 홍길동을 미워할 수가 있는가? 바로 홍길동의 자리에 허균을 집어넣으면 허균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
|
|
화보 머리말
01 16세기 화담학파의 등장과 그 배경
02 허균의 가학家學: 부친 허엽과 네 남매들 1. 아버지 허엽許曄(1517~1580) 2. 허균의 큰 형 허성許筬 3. 허균의 둘째형 하곡荷谷 허봉許篈(1551~1588) 4.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
03 허균의 파란만장한 일생 1. 허균의 가계와 형제들 2. 허균의 생장과 교육과정 3. 유소년 시절의 추억: 이단에 빠지다 4. 왜란 때 아내와 아들을 잃고 강릉으로 돌아오다 5.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아가다 6. 강릉 낙가사洛伽寺에서 억기시憶記詩를 쓰다 7. 정유재란 후 다시 벼슬길에 나가다: 종사관, 황해도 도사 8. 선조 34년: 호남 향시 시관試官과 조운판관으로 가다 9. 선조 35년: 원접사 종사관, 병조정랑 10. 선조 36년: 사복시정 파직, 금강산 유람 11. 선조 37년: 성균관 전적, 수안군수 12. 수안군수에서 파직되다 13. 선조 39~40년: 주지번朱之蕃과 교유, 삼척부사 파직되다 14. 선조 40~41년: 내자시정內資寺正, 공주목사 15. 광해군 즉위년: 공주목사 파직 후 부안으로 가다 16. 부안생활: 택당 이식을 만나다. 역모 혐의를 받다 17. 광해군 원년: 서울로 올라와 벼슬을 받다 18. 부안 매창의 노래사건, 10년을 사귀다 19. 광해군 1년: 원접사 이상의 종사관, 첨지중추부사 20. 광해군 2년: 천추사를 거절하고 감옥에 갇히다 21. <병한잡술>에 실린 시들 22. 《한정록閑情錄》 편찬 23. 광해군 2~3년: 문과 고시관考試官 부정으로 함열咸悅로 귀양가다 24. 함열에서 <식소록>, <성수시화>, <도문대작>, <화백시>, <화사영시>를 쓰다 25. 광해군 4년: 허성이 죽고, 주청사奏請使 문제로 태인泰仁으로 귀양 가다 26. 광해군 5년: 칠서지옥 후 이이첨과 밀착하다 27. 계축옥사로 영창과 김제남이 제거되다 28. 광해군 6~7년: 두 차례 명나라에 가서 서적을 구입하다 29. 광해군 7~8년: 신경희사건, 해주옥사 사건 30. 광해군 9년: 경운궁 흉서투척 사건 31. 광해군 9~10년: 폐비를 위한 여론조작과 백관회의 32. 광해군 10년: 기준격이 허균의 반역을 고발하다 33. 광해군 10년 8월: 반역으로 처형되다
04 허균의 반체제적인 학문과 사상 1. 16세기 후반 주자성리학의 후퇴와 화담학파의 실학 2. 허균의 학문관과 정치사상 3. 국방개혁 사상: <서변비로고西邊備虜考> 4. 부국강병사상: 제자백가 평론 5. <성옹식소록惺翁識小錄>과 <성수시화惺叟詩話> 6. 농업경영론: 《한정록》의 치농治農 7. 음식문화론: 《도문대작》 8. 은둔사상: 《한정록》 9. 도교와 신선神仙에 대한 생각 10. 허균과 《홍길동전》
나가면서
허균이 본 허균
허균 연보 참고 문헌 찾아 보기
|
한영우 韓永愚 Han Young-Woo
서울대학교 규장각관장, 인문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 퇴직 후에는 한림 대학교 특임교수.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와 학술원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 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시찾는 우리역사』, 『한국선비지성사』, 『과거, 출세의 사다리』 등 70여 권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