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선 명창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창이자, 현재 시점에서 자신의 청중 동원력 하나만으로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안숙선의 공연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하다. 안숙선의 공연만 본다면 판소리가 전승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판소리가 자생력을 잃은 1960년대 이후 이런 사람은 박동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기 때문에 안숙선이 자생력을 가진 유일한 소리꾼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안숙선을 통해서 판소리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암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숙선 명창에 관한 변변한 책이나 논문 한 편이 없다. 안숙선이 아직 활동 중인 현역 소리꾼이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이러한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안숙선을 통해서 판소리에 관해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다. 안숙선 명창이 워낙 예외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안숙선 명창에 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제 안숙선 명창에 대한 평가를 시도할 때가 되었다. 이 글은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사적 위치를 조망해 보고, 그의 예술에 대해 평가를 시도해 보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사적 의의가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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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5 중요 이력 9
제1부 안숙선의 증언-안숙선 증언, 최동현 채록 정리
남원춘향여성농악단 시절
출생-아버지는 집안의 큰 대부님 공연-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잘 불렀나 봐요 강백천 선생님과 함께-강원도 탄광촌까지 뒤집고 돌아다녀 처음에는 소고잽이-잘 생긴 오빠들이 쫘악 앉아 있어 소리를 배워-소리를 높이 질러라
서울 생활
김소희 선생의 권유로-종구래기처럼 데리고 다니셨어요 〈흥보가〉부터 다시 배워-소릿제가 달라가지고 힘들었죠 별명이 녹음기-판소리를 해가지고는 살아나가기가 막막해
국립창극단 시절
국립창극단에 들어가-소리를 배운 대로만 해야 한다고 하면 발전이 없어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싹수가 있으면은 국가나 기업에서 후원 연기 훈련-남의 것을 열심히 보았죠 허규 극장장-가장 호흡이 잘 맞아 창극 공연-안숙선만 최고냐?
스승
강순영-어느 때 보면은 될 때가 있느니 주광득, 강도근-통성으로 크게 내질러라 김소희-감정을 너무 쏟지 마라 박귀희-아이고, 하면 잘하것다 정권진-제가 잘 가르쳐 놓겠습니다 박봉술-술이봉 걸리막 정광수-내 수궁가가 참 좋소 박초월-나한테 오기만 오소 병창과 판소리-쉬면은 녹이 슨다
발표회
완창-박봉술 대신으로 〈적벽가〉부터 시작
이런저런 이야기
춘향제 대통령상-만정, 향사 두 분이 무대 뒤에서 들어 링컨 센터 완창-3일 동안 이어서 불러 남북음악회-북에서는 같이 이야기 못해 작은 창극-차차 단원을 좀 늘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제야 판소리-제자들하고 소리판을 열어 교수 시절-교수보다는 쟁이가 훨씬 좋았어요 단체 대표-제가 하면은 말이 없대요 창극단과 제자들-가르치다가 잠을 자 버린 일도 있었어요 내 소리-이제 다 털어내고 간단한 것이 더 좋아요 안숙선 명창의 여정-소리를 한 것이 참 잘한 일이다.
제2부 민족문화의 아이콘-안숙선 명창의 삶과 예술
1. 시작 2. 안숙선 명창의 여성 소리꾼으로서의 위치 3. 안숙선 예술의 기초:주광득, 강순영, 강도근, 강백천 4. 판소리와 병창 수업 5. 안숙선의 예술과 삶 6. 마무리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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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 崔東現 Choe, Tong-hyon 최동현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군산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오랫동안 판소리 연구에 전념하여 70여 권의 저서와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집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그대여』를 내기도 했다. 판소리학회 회장, 전북작가회의 회장, 전북민예총 회장, 전라북도문화재위원회 위원,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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