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서 타오른 학생들의 열망, 10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의 기록으로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 충돌 사건 이후 11월 3일 광주학생시위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의 억압되고 차별된 교육 현실과 식민 지배에 항거하며 거리로 나선 학생들의 용기와 외침은 단순히 학생이라는 한 계층과 지역의 움직임이 아닌, 전국을 뒤흔든 거대한 민족운동의 물결로 이어졌습니다. 이 거대한 물결 속에서 나주는 단순한 확산지가 아닌, 분기점이자 기폭제 역할을 한 핵심 현장이었습니다. 특히 나주에서는 보통학교생들이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동참하였고, 일제의 갖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항일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 뜨거운 저항의 기록이 오랜 세월의 침묵 속에서 묻혀 많은 이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번 자료집은 나주지역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 그리고 지역사회의 대응과 변화를 재판판결문, 신문자료, 남파고택의 소장자료 등을 바탕으로 정리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자료의 나열을 넘어 그날의 함성과 독립투쟁에 나서는 학생들의 결연한 눈빛을 다시 마주하게 해주는 살아있는 역사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료집이 미래 세대들에게 자긍심 있는 역사 인식과 민주시민의식을 심어주는 토대가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 이어질 기념 총서 역시 잊혀진 학생독립운동의 위대한 기록을 발굴하여 더욱 풍성하게 채워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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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_ 나주시장 윤병태 축사 _ 나주시의회 의장 이재남 간행사 _ 박경중 관장 일러두기 지료소개 _ 박찬승ㆍ김민석
Ⅰ. 신문 기사 1. 1920~1925년의 신문 기사 2. 1926~1928년의 신문 기사 3. 1929년의 신문 기사 4. 1930~1945년의 신문 기사 5. 해방 이후 신문 기사
Ⅱ. 잡지 기사 1. 전라남북도 정형 소개판(8)(『호남평론』 제3권 제8호, 1937.8.15.) 2. 독립시위로 번진 한ㆍ일학생 충돌 (박준채, 『신동아』 61호, 1969.9.1.)
Ⅲ. 재판 기록 나주학생독립운동 관련 박공근 등 판결문
Ⅳ. 광주고보학부형회위원회 자료 1. 광주고보학부형회위원회가 학부형에게 보낸 서신(사건 경과 및 상황) 2. 광주고보학부형회위원회가 학부형에게 보낸 서신(안내장) 3. 전라남도지사 각하의 훈화(첨부문서) 4. 서약서(첨부문서)
Ⅴ. 기타 자료 1. 『광주항일학생사건 자료』(朝鮮總督府警務局 編, 風媒社刊, 1979) 2. 「나주역 앞에서의 항쟁, 학생 운동의 발화」(佐堀伸三, 『實錄 若き抗日の群像』의 제4장) 3. 「나주군의 부(部)」(染川覺太郞, 1930, 『全羅南道事情誌』 下)
인명색인 _ 한국인ㆍ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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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김민석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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