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굵고 단아한 글씨체다.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사곡리 흥천동 가평 간씨 집성촌인 궁벽한 마을, 17살의 간소저(간동학)가 단정히 앉아 <구운몽>을 필사하고 곱게 배접한 책의(冊衣, 책표지)에 먹을 듬뿍 찍어 제목을 쓰는 중이다.
잠시 멈칫하더니 내지에 몇 자를 더 적어 넣는다. “허수이 간슈마쇼. 규중의 보ᄇᆡ로다.” 간소저의 선연한 필적은 <구운몽>에 등장하는 팔선녀만큼이나 필획이 경쾌, 발랄하다. 필자에게 대고모 되시는 이니는 내가 아는 한 <구운몽>을 필사해 놓은 분들 중 유일하게 나이와 사는 곳 신분을 정확히 밝힌 여성이다.
세월이 흘렀고 국문학, 그것도 고전소설을 전공하며 이 <구운몽>을 공간하고 싶었고, 결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필자에게 대고모 되시는 간소저(간동학) 할머니께서 이 책을 필사한 나이는 꽃다운 17세였다. 그니는 규중 처자의 몸으로 왜 이 <구운몽>을 번역(등서)하였을까? 혹 여성이기에 저 자유로운 팔선녀를 동경해서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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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러두기
<원문> 1. [덕이 높은 노승이 남악에서 묘법을 강론하고 수행하는 젊은 중은 석교에서 선녀를 만나다]老尊師男嶽講妙法 少沙彌石橋逢仙女 2. 화음현 쳔여통신 남병산 도인젼금華陰縣閨女通信 藍田山道人傳琴 3. 양쳔이 쥬유의 게화을 ᄲᅡ고 게섬월이 어진이 쳔거하다楊千里酒樓擢桂 桂蟾月鴛被薦賢 4. ○긔즛 여관은 졍부의 지음을 만나고 사도은 금방의 쾌ᄒᆞᆫ 사외을 읏다倩女冠鄭府遇知音 老司徒金榜得快壻 5. ○곳시을 얼허 둥심의 펌은 마음을 낫탄ᄂᆡ고 션장을 변화하여 소셩의 인연을 이루다詠花鞋透露懷春心 幻仙庄成就小星緣 6. 츈운은 귀신도 되고 신션도 되고 경홍은 게집도 되고 ᄉᆞ나희도 되다賈春雲爲仙爲鬼 狄驚鴻乍陰乍陽 7. [금란전에서 숙직하는 학사는 옥퉁소를 불고 봉래전 궁아는 아름다운 시구를 구걸하다]金鸞直學士吹玉簫 蓬萊殿宮娥乞佳句 8. ○궁녀난 눈물을 가리와 즁ᄉᆞ를 ᄯᅡ라가고 뫼신 쳡은 슬푸믈 머금고 쥬인을 ᄯᅡ라 ᄒᆞ직ᄒᆞ다宮女掩淚隨黃門 侍妾含悲辭主人 9. ○백용담의셔 양ᄉᆡᆼ은 음병을 파ᄒᆞ고 동졍호의셔 용왕은 과ᄀᆡᆨ을 잔ᄎᆡᄒᆞ다白龍潭楊郞破陰兵 洞庭湖龍君宴嬌客 10. [양원수는 틈을 내어 절문을 두드리고 난양공주는 미복으로 규수를 방문하다]楊元帥偸閑叩禪扉 公主微服訪閨秀 11. [두 미인이 손잡고 함께 수레를 타고 장신궁에서 일곱 걸음에 시를 짓다]兩美人携手同車 長信宮七步成詩 12. [양상서는 꿈에서 천상계를 유람하고 가춘운은 교묘히 거짓을 전하다]楊少遊夢遊天門 賈春雲巧傳玉語 13. [혼례식 자리에서 난양공주와 영양공주가 서로를 빚내고 헌수연에서 적경홍과 계섬월 두 사람이 장내를 압도하다]合巹席蘭陽相諱名 獻壽筵鴻月雙擅塲 14. [낙유원에 모여 사냥하면서 봄 경치를 다투고 유벽거로 소요하며 풍광을 둘러보다]樂遊園會獵鬪春色 油碧車逍遙古風光 15. [부마는 벌주로 금잔의 술을 마시고 천자가 은혜롭게도 취미궁을 빌려 주다]駙馬罰飮金屈巵 聖主恩借翠薇宮 16. [양승상은 높은 데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고 성진 스님은 본디의 곳으로 돌아오다]楊丞相登高望遠 眞上人返本還元
<현대역> 1. 덕이 높은 노승이 남악에서 묘법을 강론하고 수행하는 젊은 중은 돌다리에서 선녀를 만나다 2. 화음현의 처녀가 소식을 전하고 남전산의 도인이 가야금을 전수하다 3. 양천리가 주루에서 계섬월을 빼내고 계섬월이 어진이를 천거하다 4. 가짜 여자 도사는 정사도 관청에서 운율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고 정사도는 과거에 장원한 사위를 얻다 5. 꽃신을 읊어 임 그리는 마음 드러내고 신선의 집을 꾸며 첩의 인연을 성취하다 6. 가춘운은 귀신도 되고 신선도 되고 적경홍은 여인도 되고 사나이도 되다 7. 금란전에서 숙직하는 학사는 옥퉁소를 불고 봉래전 궁아는 아름다운 시구를 구걸하다 8. 궁녀는 눈물을 참으며 황문을 따라가고 시첩은 슬픔을 머금고 주인과 이별하다 9. 백룡담에서 양생이 음병을 처부수고 동정호에서 용왕이 사위를 위해 잔치를 베풀다 10. 양원수는 틈을 내어 절의 문을 두드리고 왕녀는 수수한 차림으로 규수를 방문하다 11. 두 미인이 손잡고 함께 수레를 타고 장신궁에서 일곱 걸음에 시를 짓다 12. 양상서는 꿈에서 천상계를 유람하고 가춘운은 교묘히 거짓을 전하다 13. 혼례식 자리에서 난양공주와 영양공주가 서로를 빚내고 헌수연에서 적경홍과 계섬월 두 사람이 장내를 압도하다 14. 낙유원에 모여 사냥하면서 봄 경치를 다투고 유벽거로 소요하며 풍광을 둘러보다 15. 부마는 벌주로 금잔의 술을 마시고 천자가 은혜롭게도 취미궁을 빌려 주다 16. 양승상은 높은 데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고 성진 스님은 본디의 곳으로 돌아오다
간소저본 <구운몽>, 여성 필사의식 연구 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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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 kan, ho yun
문학박사.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순천향대학교(국어국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학과)을 거쳐 인하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 초빙교수이다. 그는 1961년, 경기 화성, 물이 많아 이름한 ‘흥천(興泉)’생이다. 두메산골 예닐곱 먹은 그는 명심보감을 끼고 논둑을 걸어 큰할아버지께 갔다. 큰할아버지처럼 한자를 줄줄 읽는 꿈을 꾸었다. 12살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꿈은 국어선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선생을 거쳐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그는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는다. 그의 저서들은 특히 고전의 현대화에 잇대 고있다. 『한국 고소설비평 연구』(경인문화사, 2002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이후, 『기인기사』(푸른역사, 2008),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김영사, 2010),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새문사, 2014 세종학술도 서),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새문사, 2016), 『연암 박지원 소설집』(새물결, 2016년 개정판), 『연암소설을 독(讀)하다』(소명, 2024), 『욕망의 발견』(소명, 2018 한국연구재단 저서 지원), 『연암 평전』(소명, 2019), 『아! 조선을 독(讀)하다-19세기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새물결, 2020),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소명, 2020 : 2012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40여 권의 저서들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고전을 이용하여 현대 글쓰기와 합주를 꾀한 글들이다.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한 사이비 향원(鄕愿)은 아니 되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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