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강이 이렇게 많은 스승을 모셨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강한 욕심에 있다. 처음 접하는 음악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배워내고야 말았고, 운이 좋게도 항상 해당 분야의 최고 명인들과 인연이 닿았다. 그러나 음악 자체에 대한 욕심보다도 더 이생강을 채찍질하였던 것은, 완벽을 향한 목마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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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향 신동 살기위해 달린다 복면을 쓴 피리재잉 운명처럼 나타난 스승 한주환 광복동 야시장의 피리 부는 소년 남도의 느낌 동가식 서가숙 우리 음악 최초의 해외 무대 독주 신접 사나이 울리는 구슬픈 소리 이름이 나기 시작했던 60년대의 일상 입이 돌아가도 대금은 분다 겁 없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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