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웅의 씨름이야기』. 한국 씨름인들의 맥을 정리한 것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씨름 장사들의 면모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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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웅의 씨름 앨범
머리말 추천사
제1장 김학웅의 씨름이야기 -1995.3.17~6.2 『영남일보』연재 칼럼- 제2장 장사들의 츨신지 및 연대별 우승 후보들 제3장 그때 그 시절 3백여 장사들 이야기 제4장 씨름기술 100가지 -글·사진: 김학웅-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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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때 모래판은 말이야…" 살아있는 씨름역사 김학웅씨 씨름이야기 발간
씨름대회 우승자가 장군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천하장사, 백두장사, 한라장사 등 씨름대회 각 체급별 우승자에게 붙여주는 장사라는 타이틀이 익숙하지만 1950년대 말까지 장군이었다는 것이다.
각종씨름대회에서 100여 차례 우승하고 청구씨름단 감독, 한국씨름연맹 사무총장 등을 지낸 원로 장군 김학웅)씨의 증언이다.
김씨가 최근 펴낸 김학웅의 씨름이야기(민속원 발간)에 따르면 천하장사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1959년 7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일보사가 공동 개최한 제1회 천하장사대회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천하장사 씨름대회라고 쓴 휘호를 하사했고 그 후부터 장사라는 명칭이 차츰 널리 쓰이게 됐다. 이 대회에서 김기수가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천하장사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김씨는 "후배들에게 씨름의 역사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잊혀져 가는 씨름 장군들과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씨름의 뒷이야기들이 실려있다.
1957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500여명의 장군들이 출전하는 바람에 오후 10시에 시작된 예선 경기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것. 차례를 기다리던 장군들은 쌀쌀한 날씨에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자다가 경기장에 나서기도 했다고.
62년 추석 때 안동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채일포와 김학성이 8강전에서 만나 두시간 이상 승패를 가리지 못하자 다음날로 연기되기도 했다.
- 한국일보[2009. 5. 4, 김두용 기자]
`장군시대 씨름이야기..밤샘 경기도 했다
광고 (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 지금은 천하장사, 청룡장사, 백호장사 등 씨름대회 각 체급별 우승자에게 붙여주는 `장사가 익숙하지만 `장군으로 불리는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면 장사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언제부터일까?
전국씨름대회에서 100여차례 우승하고 청구씨름단 감독, 2002년까지 한국씨름연맹 사무총장을 지냈던 김학웅)씨가 옛날을 회고하며 `김학웅의 씨름이야기(민속원 발간)라는 책을 펴냈다.
김학웅씨는 "이제 내 나이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기억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후배들에게 씨름의 역사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이제는 잊혀져 가고 있는 씨름 `장군들과 `천하장사의 유래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씨름의 뒷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김씨에 따르면 천하장사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1959년 7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일보사가 공동개최한 제1회 천하장사대회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천하장사 씨름대회라고 쓴 휘호를 하사했고 그 후부터 장사라는 명칭이 차츰 널리 쓰이게 됐다. 이 대회에서 김기수가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천하장사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왼씨름, 오른씨름, 통씨름 등 다양한 형태의 경기 방식이 이 대회를 계기로 통일되기는 했지만 시간제한이 없어 재미있는 일도 많이 일어났다.
1957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500여명의 장군들이 출전하는 바람에 밤 10시에 시작된 예선 경기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장군들은 쌀쌀한 날씨에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자다가 경기장에 나섰다.
1962년 추석 때 안동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채일포와 김학성이 8강전에서 만나 두시간 이상 승패를 가리지 못하자 다음날로 연기되기도 했다.
당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은 김학웅씨도 `기술대왕이라 불리는 경량급의 강자였지만 군대를 갔다와서보니 김성률이라는 선수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후배에게 무참히 패하느니 은퇴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선수생활을 접었다고 한다.
아직도 후배들에게 할 얘기가 많다는 김학웅씨지만 현재 씨름계 상황을 생각하면 표정이 어두워 진다.
김학웅씨는 "씨름협회장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다보니 씨름계가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할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연합뉴스[2009. 5. 2]
김학웅 씨름연맹 전 사무총장, 회고록 발간 김종력기자 댓글 0
50~60년대 모래판을 호령한 ‘영원한 씨름인’ 김학웅 전 한국민속씨름연맹 사무총장)이 씨름 인생 50년을 정리한 책 ‘김학웅의 씨름이야기’(민속원·1만5000원·사진)를 펴냈다.김학웅 전 사무총장은 이 책에서 정리하지 않으면 잊혀질 씨름인들의 야사(野史)와 개인적인 씨름 인생을 희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선수시절 68㎏ 남짓한 경량급 선수임에도 화려한 기술로 120~130㎏이 넘는 상대를 자유자재로 넘어뜨려 ‘기술대왕’ ‘씨름의 천재’ 등으로 불렸던 지은이는 이 책에서 씨름기술 100가지를 사진과 함께 상세히 공개했다.
- 스포츠칸[2009. 4.27, 김종력기자]
- 중부매일(2019.10.31) [허건식의 무예이야기 - 일제강점기 최고의 씨름꾼은 김윤근] 기사의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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