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
저자
이종철
판형|쪽
신국판 | 328쪽
발행일
2009년 8월 24일
ISBN
978-89-5638-807-6
가격
16,000원
조상님들은 수천 년 생활을 이어 오면서 전통 신앙을 잉태시켜왔다. 피와 살 속에 베어 있는 새로운 해를 맞을 때 설렘과 기대 심리는 십이지 신앙의 뿌리를 키워왔다. 농사와 관련된 24절기와 단오, 복날(삼복), 칠석의 잡절 잔치는 농업 생산력과 관련된 역사적 경험 과학이고 통계의 지혜였다.
명절과 세시는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마을과 마을, 사회와 사회를 연결해 주는 문화적 고속 통신망이었다. 사람이 지구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마음 모습과 상상의 제작 창조자인 인간은 안전한 삶의 생존 욕구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종교를 만들어 왔다. 종교현상으로서 관습, 법, 윤리, 도덕, 교육과 연결된 지식 체계로서 세시신앙은 점복, 전통적 믿음과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사회 문화적 유산으로 심화발전 되어왔다.
세시명절 속 한국인의 생활 읽기
열두 띠 이야기
명절이야기
춘하추동과 24절기 이야기
참고문헌
경력
李鐘哲
全北益山, 全州高, 서울대 문리대 고고인류학과, 영남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민속학, 사회인류학) 석사, 박사
미국스미스소니안 인스티튜션, 덴마크 민족학 박물관, 박물관학 연수, 일본동경대 문화인류학 교실 연수
문화재청 한국민속박물관 학예사, 문화재연구소 연구관, 국립광주박물관 연구실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한국전통문화학교 2, 3대 총장
목포대, 한양대, 서울대(한국민속학, 박물관학, 문화인류학, 문화변동론) 강사
민속문화재 전문위원 무형분과위원, 국제교류재단 문화자문위원
유네스코 문화자문위원,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자문위원
저서
장승(열화당), 서낭당(빛깔), 한국의 성문화연구(민속원) 등 다수
41년 공직 마감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 이종철 총장
“공부도, 일도 많이 시킨 저는 악덕 총장”
그만큼 지독한 공무원을 찾기도 어려울 게다. 기록도 많이 세우고 전후좌우 돈독한 선후배 인맥이 그물코같다.
퇴임을 앞둔 한국전통문화학교 이종철 총장은 “저술 틈틈이 사교춤이나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연구소에서 연수하던 시절 춤을 못 춰 애먹은 경험이 있어서다. [김성룡 기자]
31일 41년에 걸친 공직 생활을 마감하는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차관급)이 주인공이다. 1968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실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거쳐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40여 년 연구 성과를 담은 책 『문화의 옛길을 걸으며』 『한국 민속신앙의 탐구』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민속원) 등 3권을 내고 25일 퇴임 인사를 겸한 출판기념회를 친정이라 할 서울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었다. 그는 『장승』『서낭당』 『한국의 성문화 연구』 등을 낸 대표적 민속학자이지만 공무원으로서 더 이름을 날렸다. 국립민속박물관장을 두 차례에 걸쳐 총 13년간 지내면서 연간 관람객 30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한국전통문화학교의 미완의 과제 가슴에 묻고=25일 오전 본사 회의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그러나 “급한 건 학교”라며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미완으로 남겨둔 과제를 차례차례 꺼내 들었다. ▶‘대학’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학원도 설치하지 못하는 법령 개정 ▶문화재 관련 기술직 공무원 신설 ▶학교 부지 30만 평 확보 ▶구 서울과학관 부지에 학교 부설 박물관·미술관 건립 등이다.“일본 동경예술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중국 칭화대와 자매 결연을 맺었어요. 한·중·일 동북아 문화를 아우르는 국제교류대학원을 만들고자 했죠. 그러려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아요.” 곧 물러날 사람 같지 않았다. “총장 직무야 끝났지만 인간적 측면에선 끝낼 수 없잖아요. 앞으로 5년~10년간 제가 키운 아이들이 나올 텐데, 제 책임이 있는 거니까요.”그는 ‘악덕 총장’이라 불렸다. 학생들에겐 토익점수, 한자급수, 각종 자격증 등을 요구했고 교수들에겐 기러기 아빠 노릇은 끝내고 가족을 학교가 있는 충남 부여로 데리고 오라고 압박했다. 문화재 분야에선 답사와 실습이 중요한 만큼 교수들이 주말까지 털어 학생들을 이끌고 다니길 바랐던 것이다.◆고객감동으로 박물관에 대한 편견 깨고=“박물관 후배들은 혹사당하면서도 제 뜻을 알고 이해해줬지만, 학교에선 힘들더군요.” 국립민속박물관장으로 있는 동안 6800만 원이던 연간 예산을 120억 원으로 끌어올렸던 그다. 기획예산처 담당 과장에게 삼겹살을 사 먹이며 설득했다. 그래서 ‘로비의 귀재’란 말을 듣기도 했다. “삼겹살로 로비가 되겠습니까? 자료를 잘 만들어 과학적으로 설득해야 해요.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여주는 고객감동도 있어야죠. 예산을 따는 건 열정으로, 예산 쓰는 건 진실과 예술로써 해야죠.”국립민속박물관이 꾸렸던 관객 참여형 전시는 늘 화제거리였다. 박물관은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곳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다.“다니는 데마다 1등, 아니 특등을 만들었지만 학교는 제 마음에 안 차요.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건강도 챙기고, 지금껏 못 쓴 글들도 마저 쓰고, 일하며 맺은 업연(業緣)들과 옛 이야기도 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중앙일보] 이경희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축제이야기’ 20선] <12>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 이종철 지음/ 민속원 발행
산타가 벤치마킹한 ‘동지버선’
80kg주부 48kg 감량 도전 초등교사 P양, 결혼 못한 《“조상님들은 수천 년 생활을 이어 오면서 전통 신앙을 잉태시켜 왔다. 피와 살 속에 배어 있는 새로운 해를 맞을 때의 설렘과 기대 심리는 십이지 신앙의 뿌리를 키워왔다. 농사와 관련된 24절기와 단오, 복날, 칠석의 잡절 잔치는 농업 생산력과 관련된 역사적 경험 과학이고 통계의 지혜였다.”》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이종철 지음/민속원
전북 익산시가 고향인 저자는 어린 시절 사금광산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명절 때면 시골 장에서 햇과일과 새끼돼지를 사와 이웃에게 동네잔치를 베푸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할머니는 초파일에 떡과 과일, 쌀을 가지고 전북 전주시 안행사에 가서 제를 올렸다. 초여름에는 모시개떡, 밀전병, 백설기를 만들고 성주신(집을 다스리는 신)에게 고사한 뒤 이웃 아낙들을 대접했다. 저자는 세시풍속과 잔치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저자는 국립민속박물관장과 한국전통문화학교장을 지낸 무형문화재 전문가다. 그는 농촌문화가 사라지면서 이런 전통들도 함께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꼈다. 책에는 저자가 목격한 세시명절 속의 한국인의 일상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설은 전날부터 흥겹다. 섣달그믐날 밤 집안의 어머니들은 복을 일구어내는 복조리를 부엌 앞이나 문지방에 걸어뒀다. 할머니들은 머리를 빗을 때 빠진 머리카락을 빗첩에 모아두었다가 문 밖에서 태워 재액을 물리쳤다. 설날에는 마을의 액을 쫓고 행복과 장수를 불러오는 매구굿을 쳤다. 이때는 부잣집, 가난한 집 모두가 대문을 활짝 열고 무사태평을 축원했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삼짇날(음력 3월 3일)도 과거에는 큰 명절이었다. 이날 처녀들은 강남에서 돌아오는 제비를 먼저 보면 그해 운이 좋다고 해 제비를 향해 긴 옷고름으로 고(고리)를 걸어 ‘제비마중’을 했다. 삼짇날은 부엌살림의 필수인 장을 담그는 날이기도 했다. 고추와 숯을 띄워 메주 간장의 독을 제거하고 부정을 막기 위해 새끼 금줄을 쳤다. 봄을 맞이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던 삼짇날은 고려시대에 가장 번성했다가 유교의 엄숙주의가 기승한 조선시대부터 잊혀진 명절이 됐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음력 7월 7일)의 풍습도 다채로웠다. 이날은 칠석 차례를 지냈는데 올벼를 사당에 천신하고 샘을 깨끗이 치워 떡을 놓고 샘고사를 지냈다. 부인들은 밤에 칠석단, 서낭당에 개떡과 밀전병, 햇과일을 놓고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한강 이북에서는 칠석맞이라고 해 쌀이나 돈을 가지고 무당집을 찾아 촛불을 켜고 축원을 올렸다.
동짓날은 현재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만 남았지만 예전에는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이날은 달 보기 점을 했는데 달이 완전히 지고 동이 터 오면 풍년이 들고, 달이 지지 않고 날이 새면 시절이 나쁘다고 점쳤다. 동지부터는 해가 토끼 꼬리만큼 길어진다며 노인에게 원기가 돌아오라고 목이 긴 버선을 바쳤는데 이를 ‘동지버선’이라고 했다. 저자는 “유럽의 크리스마스축제가 당시 동양의 동지 축제를 본뜬 것”이라며 “크리스마스는 갈수록 번성하는데 동지는 소멸해 가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난했던 시절 역경을 이겨냈던 것은 유머와 여유였다. 잊혀진 명절 풍습을 되살려 세상의 따뜻함과 마음의 풍요를 복원하자”고 제안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동아일보, 2010-07-08 03:00,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