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궐의 막새기와 문양과 장식기와
저자
김홍식
판형|쪽
신국판변형/양장 | 432쪽
발행일
2009년 12월 28일
ISBN
978-89-5638-759-8
가격
25,000원
우리나라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소한 것으로 보이지만, 댓돌이다. 이것은 예법에서 행동거지의 방향성을 지시해 준다. 이쪽으로 올라 오라던가 혹은 방안에 주인장이 없으니 돌아가라던가 하는 암시이다. 예를 들면 종묘에서 답도의 중요성은 너무나 강조되었다. 답도를 따라 들어가다가 조금 넓고 높은 디딤대가 나오면 잠시 머믈었다가,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는 뜻일 게다. 만일 이런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아무데나 댓돌을 갖다 논다던가 혹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편하게 답도의 폭을 넓힌다면 어떤 결과를 낳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서원, 향교 혹은 절집에서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러고도 우리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철학이 담긴 미학, 예법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는가?
머리말
화보
1장 막새기와의 종류
1. 연구의 목적과 의의
2. 막새기와의 종류
3. 특수기와의 사용
4. 고려시기의 막새기와
2장 암막새의 분류
1. 제작시기별 드림새 형태의 분류
2. 문양별 분류
3장 수막새의 분류
1. 제작 시기별 형태의 분류
2. 문양별 분류
4장 장식기와의 분류
1. 취두의 종류
2. 용두의 종류
3. 망와의 분류
4. 토수의 종류
5. 잡상의 종류
5장 종합
1. 고려말의 막새기와문양
2. 암막새의 분류
3. 수막새의 분류
4. 장식기와의 분류
부록 막새기와와 장식기와의 일람표
참고문헌
■김홍식(金鴻植)
-1946.2.6 전남 광주 출생(제주 원적)
-1946 광주일고 졸업
-1968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 1972 동대학원 졸업
-1989 한양대학교 박사학위 수여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재)한울문화재연구원 원장
-1973~1975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연구원
-1975~1980 금성종합설계공사 대표
-1980~현재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1985~2002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2007~2009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주요저술
-민족건축론, 1987, 한길사
-한국의 민가, 1991, 한길사
-초가, 1991, 열화당
-문화환경보전과 건축, 1993, 발언 (공저)
-18세기 신도시 20세기 신도시, 1996, 발언(공저)
-전통목조건축의 발전과 21세기 목조건축의 전망, 2002, (재)소호문화재단 소호산림과학기술논설집
■주요논문 및 보고서
-실학건축 사상연구, 1972, 건축학회지
-낙안 민속보존마을 조사연구보고서, 1979, 승주군
-성읍 민속마을 보존 및 육성 기본계획(안), 1980, 제주도
-전통가옥 조사보고서, 1984,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대관(중요민속자료), 1985, 문화재관리국
-20세기 전반기 한국의 저층상점에 대한 연구, 1986, 공학기술연구소논문집1집
-양택론에 있어서 안채와 사랑채의 간잡이 방식에 대한 연구, 1988,대한건축학회
-한국건축사(조선시대편), 1996, 대한건축학회
-경희궁지 보존 및 활용방안, 1996, 서울시청
-암사동 선사주거지 및 주변정비 종합 개발계획(안), 1997, 서울시 강동구
-경희궁지 발굴조사보고서, 1998, 서울시
-20세기 한국 건축의 변천, 1999, 중국건축학회
-익산미륵사지석탑 정밀사진실측 및 보수복원방안 학술연구, 2000, 전라북도익산지구문화유적지관리사업소
-고궁 건물막새 등 문향조사, 2000, 문화재청
-문화재수리 표준시방서 정비조사 연구, 2003, 문화재청
-문화재수리 표준품셈 기초조사 연구, 2004, 문화재청
■주요건축작품
-벽골제 수리민속 유물전시관, 1993, 전라북도 김제군
-청자 재현품 전시판매장, 1994, 전라남도 강진군
-산림종합전시관, 1994, 서울 홍릉(산림청)
-무주리조트내 건축물, 1996, 전라북도 무주군
-장성 백양사 전시관, 1998, 전라남도 장성군
-서창 향토문화마을, 1998, 광주관역시
-해남우항리 공룡화석지 보호각, 1991, 전라남도 해남군
-정림사지 전시관, 1991, 충청남도 부여군
-국악전수관.국악박물관, 2000, 광주관역시 서구청
-산림생물표본관, 2000, 광릉수목원(산림청)
"궁궐 지붕마루 잡상 첫 번째는 손오공"
김홍식 교수 "갑옷 입은 삼장법사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복궁 근정전이나 경회루, 창덕궁 홍화문, 그리고 종묘의 정전과 같은 왕실의 최고급 기와건물 내림 마루에는 어김없이 잡상(雜像)이라고 일컫는 장식물이 일렬을 이룬 채 서 있다.
이 중에서도 맨 앞을 차지한 잡상은 정체가 대당사부(大唐師父), 즉, 당나라의 저명한 구법승인 삼장법사 현장으로 그동안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고건축 전공 김홍식(金鴻植.64)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는 실제 잡상과 관련 문헌기록을 검토, 대비한 결과 이 잡상은 대당사부가 아니라 손오공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에 의하면 궁궐 잡상의 여러 종류를 나열하면서, 그 맨 앞에 있는 장식기와를 대당사부로 설정하기는 1920년에 나온 상와도(像瓦圖)라는 건축 관련 책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실제 궁궐 건축에서 확인한 이 잡상은 갑옷을 걸치고 모자로는 불쑥 튀어 오른 삿갓을 걸친 데다, 돌을 닮은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쫙 벌리고 손은 무릎에 얹은 모습이었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확인되는 잡상을 보면, 몽고식 삿갓을 쓰고 귀를 막고, 등 뒤로 끈을 질끈 동여맨 갑옷을 걸쳤다.
이런 특징들을 거론하면서 김 교수는 "삼장법사 현장이 갑옷을 걸친다는 게 정상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1647년에 나온 창덕궁 수리 보고서인 창덕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修理都監儀軌)에서 여러 잡상 이름으로 손행자 또는 손행자매, 준견 또는 준구, 마룡, 산화승 등을 거론했지, 대당사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따라서 김 교수는 실제 잡상에서 보이는 특징이나 이런 기록들을 고려할 때, 문제의 잡상은 정체가 손오공이지, 결코 삼장법사 현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건축물 잡상에 이 손오공 외에도 저팔계와 같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소재를 활용한 경우가 많은 까닭은 조선시대에 이 소설이 널리 읽힌 데서 비롯됐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조선시대 궁궐건축 자재 중에서도 잡상을 비롯해 그냥 흘려버리기 십상인 각종 기와에 주목해 그것을 일일이 분류하고, 그에 나타나는 문양을 세심하게 분석한 조선시대 궁궐의 막새기와 문양과 장식기와(민속원)에 저자인 김 교수는 이런 주장을 담았다.
연합뉴스 기사전송 2010-03-09 17:09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궁궐 잡상 우두머리는 손오공”
김홍식 교수 주장
▲ 우리나라 궁궐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11개의 잡상이 설치돼 있는 경복궁 경회루 내림마루의 전경. 김홍식교수 제공
▲ ‘상와도’에 실린 대당사부(왼쪽부터)와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자) 등의 잡상 도면. 김홍식 명지대 교수는 대당사부를 손오공으로, 손행자를 손오공의 시종인 손행자매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문화일보) 최영창 기자 = 경복궁 근정전과 근정문 및 경회루, 창덕궁 인정문과 돈화문, 덕수궁 중화전, 종묘 정전 등 조선시대 임금이 행차했던 궁궐의 중요한 건물의 내림(귀)마루에는 어김없이 잡상(雜像)이라고 일컫는 장식물이 적게는 3개(좌)에서 많게는 11개까지 홀수로 배치돼 있다.
우리나라 궁궐의 잡상 현황 조사 결과 잡상이 11개가 올라가는 것은 조선 말기 왕권강화의 상징인 경복궁 경회루 한 건물뿐이다. 또 대한제국의 법궁(法宮·임금이 주로 거처하고 공식활동을 하던 궁궐)인 덕수궁 중화전만 특이하게 짝수인 10개의 잡상이 서 있다.
중국의 송·원대에 시작해 명나라 때 완전히 정착한 잡상이 국내에 들어와 일반화한 것은 고려 후기인 13세기에 들어와서다. 조선시대 들어오면 법전인 ‘경국대전’에 잡상장(雜像匠)을 따로 와서(瓦署·조선시대 왕실에서 쓰는 기와나 벽돌을 만들어 바치던 관아)에 4명을 배치할 정도였다.
고건축을 전공한 김홍식)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는 최근 펴낸 ‘조선 궁궐의 막새기와 문양과 장식기와’(민속원)에서 장식기와의 한 종류인 잡상의 도상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기한다. 그동안 잡상의 맨 앞을 차지한 것은 1920년 간행된 잡상도록인 ‘상와도(像瓦圖)’의 기록에 따라 대당사부(大唐師父), 즉 당나라의 저명한 구법승인 삼장법사 현장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궁궐 잡상과 관련된 문헌기록을 검토·비교한 김 교수는 “스님이 궁에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도 우스꽝스럽다”며 “1647년 ‘창덕궁수리도감의궤’에 나타난 명칭인 손행자(손오공)로 보는 게 맞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의 잡상은 중국과 달라서 형상과 이름이 전혀 다르다”며 “손오공인 손행자가 제일 첫 자리를 차지하며 그다음으로 손오공의 시종인 손행자매, 준견(저팔계), 준구(사화상)의 순서로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소설 ‘서유기’가 대유행을 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몽고식 삿갓을 쓰고 귀를 막는 갑옷을 걸친 채 경복궁 근정전 내림마루의 앞자리를 차지한 잡상을 삼장법사 현장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와 달리 사원과 민가 건물에도 설치됐던 중국의 잡상은 선인(仙人)이 이끌고 원숭이가 마지막 행렬을 마감하고 있어 도교의 상징성이 강하게 풍긴다.
잡상을 비롯해 조선시대 궁궐에 사용된 각종 장식기와와 막새기와의 문양을 모두 조사하고 분류한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불로초 문양으로 널리 알려진 암막새의 문양도 거미문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궁궐에서 용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거미문은 대체로 격이 낮은 행각이나 담장 등 부속건물의 문양으로 널리 쓰였다. 부록으로 궁궐의 각종 막새기와와 장식기와의 사진과 문양을 정리한 ‘막새기와 장식기와의 일람표’가 실려 있어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답사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궁궐 건축의 지붕에서 발견되는 청기와 황기와에서 광해군과 효종이 조선을 황제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숨은 뜻을 읽을 수 있듯이 우리 건축 하나하나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10-03-23 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