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2007~2017년)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이하, “본 연구소”로 약칭)는 “동아시아 상생과 소통의 한국학”이라는 아젠다로 인문한국(HK) 사업을 수행하면서 연구소 내에 <인천학연구실>을 두어 복수複數의 ‘동아시아한국학’ 가운데 하나로 ‘인천학’을 자리매김하는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노력은 인천 내 여러 기관으로부터 ‘인천학’ 관련 연구 사업을 수행하거나, 인천학 관련 학술회의를 기획 및 주최하고, 또 인천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기획 및 운영하는 작업들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본 연구소는 ‘인천학’의 정체성 찾기와 토대 마련, 그리고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학’의 정체성을 선도하는 연구사적 성과가 부족했다는 고민은 한 편에 늘 자리 잡고 있었고, 조급한 과제로 남았다. 다행이도 인문한국 사업을 종료하는 시점에 이르러 그 과제를 푸는 하나의 결실을 상재上梓하게 되었다. 지난 10년 간 본 연구소의 인문한국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은 연구자들의 기 발표 논문들 가운데 ‘인천학’과 관련된 글들을 선별하여 한 권의 공동연구서로 기획, 발행하게 된 것이다. 선별의 기준은 ‘인천지역사’에 관한 연구들로 제한하였으며, 구성은 제1부 ‘전통시대 인천의 역사와 문화’와 제2부 ‘근대 이후의 인천과 동아시아’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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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인천지역사와 동아시아를 발행하며
제1부 전통시대 인천의 역사와 문화
조선시대 ‘仁川’지역 거주자의 과거급제 양상 |임학성| -生員·進士 합격자를 중심으로-
日記 자료를 통해 본 16세기 후반 守令의 管外 활동 |안홍민| -江華都護府使 全舜弼의 사례 연구-
조선후기 강화도 ‘吳宗道去思碑’의 건립 배경과 의미 |배성수|
서해 북부 해역에서의 海浪賊 활동과 조선정부의 대응 |류창호| -海浪島 搜討(1500년)에서 白翎鎭 설치(1609년)까지-
조선 후기 喬桐의 鄕案 입록 전통과 향권 주도 성씨의 추이 |차인배|
역사 속의 인천 여성 |임학성| -地理志 자료에서 추출한 前근대 인천 지역의 여성-
제2부 근대 이후의 인천과 동아시아
개항기 한ㆍ중ㆍ일 定期 海運網과 조선상인의 활동 |황은수|
청일전쟁 이후 仁川 淸國租界의 법적 지위와 租界 내 조선인 거주문제 |박준형|
19C말 仁川港 거주민 양상과 대민통치방식 |김현진| -光武 2년(1898) 仁川港 畓洞·外洞 戶籍을 중심으로-
인천해전의 선택적 기록과 목적적 기억 |장윤이|
인천 일본인 거류민단의 형성과 갈등 |추교찬| -제1기 거류민회 시기(1906~1908년)를 중심으로-
제2기 인천 일본인 거류민단의 운영과 활동 |추교찬|
1940년대 초 인천지역 화교사회의 동향 |배성수|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장 1942년 화교자료의 분석을 중심으로-
1960~1970년대 즈웨버BenedictA.Zweber의 덕적도 선교 활동과 그 의의 |이영미|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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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편 (게재순) 임학성∥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안홍민∥인천문화재단 강화역사문화센터 연구원 배성수∥인천광역시립박물관 컴팩스마트시티부장 류창호∥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차인배∥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황은수∥인천광역시 남구청 주무관 박준형∥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조교수 김현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장윤이∥국회사무처 홍보기획관실 주무관 추교찬∥인하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영미∥건양대학교 인문융합교육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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