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비명」 비각에 현존하는 비석이다.
“이런 가운데 비석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로 새긴 비문이 남아 있는 전면은 점판암의 결이 일어나면서 글자가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이 극심하다. -중략- 이런데서 완전하게 남아 있는 글자는 기껏해야 사진에서 보이는 이 정도뿐이다. 이 중에 판독 가능한 글자를, 맨 오른쪽 상단부에서 왼쪽으로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판독한 글귀를 풀이한다. 첫줄 글귀는 受具 於是遊歷禪肆~구족계를 받고 이에 선방을 출입하니. -중략- 열한 번째가 마지막 글귀로서 還舊山 辭~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말씀하셨다. -중략- 이것이 현존하는 비석이 두 쪽으로 갈라진 비신의 오른쪽 비문이자 현존하는 『보각국사비명』 지금의 실체이다.”
“이후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양양군 사찰 조에는 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사찰을 포함해서 신흥사·내원암·소림암·명주사·원통암·모연암·개운사만 더 기록되었을 뿐, 역시 진전사는 보이지 않는다. 낙산사가 자리한 오봉산은 낙산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오봉산 밑에 있다는 관음굴은 낙산사 동쪽의 산내 암자인 홍련암에 있다. -중략- 그런데 조선시대 『현산지峴山誌』의 사찰 조에 둔전사가 기록됐다. 고적 조에도 둔전동탑이 기록됐는데, 각각 둔전이란 명칭을 붙였다. 둔전사가 곧 진전사이다. 앞에서의 기록과 같이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16세기경에 폐사되었거나, 또 1467년까지 존속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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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보각국사비첩』과 「보각국사비명」 「보각국사비명」에 나타난 일연의 생애 일연의 탄생지 경상도 장산군章山郡 해양의 무등산에 흔적 없는 무량사無量寺 승과에 장원급제하기까지의 양양의 설악산 진전사陳田寺 승려로서 첫발 내디딘 포산의 보당암 그리고 묘문암과 무주암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관기성사, 그 암자 터 발견 정안의 초청으로 주지로 갔던 남해의 정림사定林社 대장경 판각이 완료되고 옮겨 머문 윤산의 길상암吉祥庵 왕명으로 주석한 강화경 선월사禪月社 경상도로 내려온 영일의 운제산 오어사吾魚社 다시 찾은 포산의 인홍사仁弘社 그리고 용천사湧泉寺 충렬왕이 주지로 추대한 청도 운문사雲門寺 충렬왕이 자주 들른 개경의 광명사廣明寺 일연의 마지막 하안소 인각사麟角寺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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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시 權寧時, Kwon Young Si
경북 안동 출생.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대구광역시에서 공직을 마감했으며, 녹조근정 훈장을 수훈했다. 《제26회 대구광역시 자랑스러운 시민상》 ‘지역개발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시인, 대한민국 신지식인이다.
저서로는 『포산(包山)서 되찾은 일연의 흔적과 비슬산 재발견(북랜드)』, 『「보각국사비명」 따라 일연(一然)의 생애를 걷다(민속원)』, 수필집 『너덜겅의 푸른 땀방울(성진애드컴)』, 시집 『소낙비는 소리비(시와 반시사)』 공저, 대구광역시공무원교육원 교재 『대구역사와 유적』 공저가 있으며, 경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숲과 건강생활』 강좌를 개설하고 교재를 집필하였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대구광역시지회 회원 및 여러 문학단체에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대구생활문인협회(회원 200여명) 3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구광역시교육청에 교육 기부하여 중구와 수성구의 초·중등학교에 문학 강의 멘토를 지냈다. 지금은 조선 시대의 지리지 중 경기도와 충청도 및 강원도 부·군·현을 우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구하기 위해 수도권에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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